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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웨이, 피아노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때때로 스타인웨이가 피아니스트보다 더 훌륭하게 연주한다.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랍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내가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는 것은 스타인웨이로 연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프레드 블렌델)

“피아니스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피아노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모든 현악기 연주자가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를 최고의 ‘명기(名器)’로 손꼽듯, 피아니스트에게 ‘최고의 피아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다.

“스타인웨이.”

 

영롱한 음색과 부드러운 터치감, 밀도 있는 울림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전 세계 연주회장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음악의 98% 이상이 스타인웨이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통계가 그다지 허황돼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05~2006시즌에 빈필과 베를린필은 피아노 협주곡 연주에 한 차례도 빠짐 없이 스타인웨이를 사용했다. 뉴욕필이 13차례의 피아노 협주곡 연주에서 스타인웨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 피아노의 스트라디바리우스

 

정식 명칭은 ‘스타인웨이 앤 선스(Steinway&Sons)’. ‘D-274’, ‘C-227’, ‘B-211’과 같은 모델명에 붙은 숫자는 길이를 의미한다.

연주회에서 흔히 접하는 풀콘서트 그랜드 피아노 ‘D-274’는 길이 274센티미터에 480킬로그램의 무게가 나간다.

 

지금까지 스타인웨이는 현악기의 ‘명기’만큼 인정받지 못했다. 1600~1700년대에 만들어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바이올린은 전 세계에 각각 540여대, 150대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을 만큼 희귀한 데다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깊은 소리를 내지만 피아노는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1500년대 전반에 등장한 바이올린과 달리 1700년대에 와서야 개발된 피아노의 역사는 이제야 300년을 넘겼다. 수명도 짧아 하루에 4~6시간씩 연주할 경우 고작 15년이면 노화된다. 늘 ‘새 악기’로 교체해야 한다.

수공이긴 하지만 일찌감치 공장생산 시스템이 확립돼 현악기에 비해 대량생산(?)이 가능한 것도 ‘고유성 부족’의 이미지를 보탰다.

그러나 악기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가치를 동등한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애초부터 공평하지 못하다.

 

독일 태생의 가구 제작자 하인리히 스타인바흐(Heinrich Steinwag?1797~1871)는 1850년대 초반 미국 맨해튼으로 이주한 뒤 헨리 스타인웨이(Henry.E.Steinway)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바꾸고 아들 여럿과 함께 피아노 공장을 설립했다.

 

그는 현을 교차시킴으로써 악기폭을 줄이고 새로운 금속 프레임과 핀을 개발해 현의 장력을 30톤까지 늘렸으며, 이에 걸맞은 강한 해머를 도입해 현대 피아노의 원형을 확립했다. 지금까지 스타인웨이가 출원한 특허는 100여개에 이른다. 이로써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비르투오조(기교가 뛰어난 연주자)의 강한 타건을 견뎌내는 동시에 지극히 여리고 서정적인 음색까지 구사하게 됐으며, 등장 직후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현재 스타인웨이는 미국과 독일의 두 곳에서 생산된다. 미국산은 북?남미 지역에, 음질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독일산은 유럽과 아시아 등 나머지 국가에 수출된다.

 

피아노 한 대가 탄생하려면 2년가량이 걸린다. 100% 수작업이다. 향판의 나이테가 균일하고 촘촘해야 고른 울림이 나오기 때문에 알래스카 해안삼림지대에 서식하는 시트카 스푸르스(Sitka Spruce) 원목만을 사용한다. 우선 나무가 온도나 습도에 따라 변형되지 않도록 수차례 가공하고 압축해 얇은 판을 만든 다음 이를 겹겹이 붙여 단단한 울림통과 건반을 만든다. 여기에 특허 개발한 철골과 현을 끼우고 해머와 핀을 조립한다.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 수는 1만2000여개. 얼마나 정교할지가 짐작된다.

 

 

▶ 백건우와 알프레드 블렌델의 공통점…‘스타인웨이 아티스트’

 

전문 연주자들의 스타인웨이 선호는 절대적이다.

백건우를 비롯해 알프레드 블렌델, 마르타 아르헤리치, 랑랑, 예프게니 키신 등 최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이 이른바 ‘스타인웨이 아티스트(자신만의 스타인웨이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연주회에서 스타인웨이를 사용하는 연주자)’로 불린다. 크리스티안 짐머만은 한 술 더 떠, ‘자신의 스타인웨이’를 비행기에 싣고 다니면서 연주할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인다.

 

대부분의 공연장은 ‘풀콘서트 그랜드 피아노’(연주회용)로 스타인웨이를 보유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음악당은 스타인웨이 5대와 벡스타인 1대, 야마하 1대를, 세종문화회관은 대극장, 채임버홀, M시어터에 각각 스타인웨이 2대씩을, LG아트센터는 스타인웨이 2대를, 호암아트홀은 스타인웨이 2대와 야마하 1대, 벡스타인 1대를 보유하고 있다. 실제 연주회에서는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항상 스타인웨이가 사용된다.

 

물론 스타인웨이 말고도 ‘명기’라 불리는 피아노가 있고, 반드시 그 악기를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2월 내한한 안드라스 시프는 스타인웨이와 오스트리아산 뵈젠도르퍼를 모두 선호한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던 리스트가 끔찍이 아꼈던 뵈젠도르퍼는 스타인웨이보다 건반이 조금 더 무겁고, 현대 피아노의 표준인 88개의 건반에 4~9개의 건반을 추가한 모델을 내놔 풍부한 저음역을 원하는 연주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오는 4월 11일과 13일 LG아트센터에서 바흐평균율피아노곡집 전곡을 연주하는 안젤라 휴이트는 이탈리아산 파지올리로만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날카롭고 투명한 음색을 자랑하는 파지올리는 연주회용으로 92건반과 97건반의 대형 모델을 생산한다. LG아트센터는 휴이트의 이번 연주회를 위해 외부에서 파지올리 피아노를 협찬 받기로 했다.

 

‘건반 위의 사자’라 불리는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도 내한할 때마다 파지올리를 즐겨 사용한다. 지난 2003년 국내에 처음 파지올리 F-308 모델을 선보인 것도 그였다.

이 밖에 가볍고 팝적인 소리를 원하는 대중가수들은 일본산 야마하 피아노를 선호한다.

 

 

▶ 최초의 스타인웨이가 온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전설의 재건(Rebuilding a legend)-스타인웨이 피아노의 탄생으로부터 오늘날까지(From instrument No.1 to Today)’라는 제목으로 올 1월부터 11월까지 세계 프로모션 투어를 진행 중이다. 서울 방문은 10월(날짜?장소 미정) 예정이다.

 

‘넘버 원(No.1)’으로 불리는 최초의 스타인웨이와 작곡가 바그너가 사용했던 스타인웨이, 현대적인 하프 형태를 갖추기 전에 만들어진 사각형 스타인웨이 등 스타인웨이의 역사와 피아노의 역사를 동시에 보여주는 악기들이 전시되고, 연주회뿐 아니라 스타인웨이에 관련된 세미나도 열린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사진 제공=코스모스 악기>

헤럴드경제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03/27/200803270214.asp